브랜드

그렇게 브랜드가 된다

· 읽는 시간 약 6분

'결'이란 시간이 쌓여 만들어지는 나만의 무늬다.

나도 한때는 정해진 정답을 좇아 살았다.

하지만 거대한 회사의 부품으로 사는 동안 '이게 진짜 내가 원했던 삶인가?'라는 질문이 머릿 속에 계속 맴돌았다. 결국 나는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그 안전한 궤도를 과감히 벗어나기로 했다. 그렇게 브랜딩에 뛰어든 건,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로 나만의 기준을 세워보겠다는 결심이었다.

남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대중의 눈치만 보는 브랜드는 결국 다른 브랜드에 대체되고 사람들에게 잊힌다는 것이다. 브랜딩은 남을 흉내 내는 일이 아니다.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고 고유한 매력을 다듬어 독보적이고 차별화된 길을 걸어가는 과정이다.

'나'라는 사람을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로 만드는 것은 거창한 타이틀이 아니다. 남들의 시선에 휩쓸리지 않고 일상 속 수많은 순간을 나만의 뾰족한 기준으로 만들어 가는 사유의 축적이 핵심이다. 그렇게 쌓인 시간은 끝내 나만의 '결'이 된다. 나이테 때문에 생기는 무늬인 나뭇결처럼 말이다.

직관은 타고나지 않는다

도구에 압도당하지 말자. 그들의 속도에 맞추느라 내 생각의 깊이를 희생하지 말자.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영역, 즉 사유하는 힘을 놓지 않는 사람만이 거대한 기술의 파도 위에서 주도권을 쥐고 파도타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무의식이라는 서버에 이런저런 경험의 데이터를 끊임없이 밀어 넣었을 분이다.

나는 지독한 입력주의자였다. 입력이 없으면 출력도 없으니, 감이 좋아지고 싶다면 무조건 많이 보고 읽고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였다.

여기서의 경험이란 비단 내 업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책, 잡지, 영화, 전시 등도 이런 입력에 해당한다. 그만큼 되도록 많은 것을 내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텅 빈 머리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오길 바라는 건 재료도 없이 훌륭한 요리가 나오길 기대하는 도둑놈 심보와 같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물리적 시간이 무조건 필요하다.

평소 다양한 인풋을 머릿속에 계속 입력하고 그것을 브랜드가 풀어야 하는 문제와 연결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었다.

결국 직관이란, 생각의 속도가 극도로 빨라진 상태 그 자체일지 모른다. 남들보다 많은 경험을 하고, 그것을 자신의 기획과 연결 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였을 것이다.

치열하게 세상을 흡수하고 연결하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얼마나 낯선 자극에 나를 노출시키는가. 그리고 그 자극을 내 문제와 연결하기 위해 얼마나 집요하게 고민하는가. 그 치열한 과정만이 우리를 나이 들어도 여전히 현역에서 반짝이는 기획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비즈니스는 결국 맥락 싸움이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급한 성미를 꾹꾹 누르고 느린 이해를 견디려 노력한다. 수박 겉핥기로 열 개를 아느니 하나를 배우더라도 바닥이 보일 때까지 파 보는 태도.

'나다움'이란 경계 뛰어넘기

하지만 '나다움'은 나의 고유한 무언가가 아니다.
그래서 나다움을 내가 잘해 온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며 과거의 내 모습에서 규정하려 애쓰기보다 차라리 그 질문의 방향을 미래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게 아니라 '무엇으로 나를 만들어 갈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 앞에서 헤매지 말고, 차라리 '나는 무엇을 쌓아 가고 있는가?'라는 실천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심지어 이것이 내일의 나를 만드는데 훨씬 더 건설적이기까지 하다.

그저 내가 가고 싶은 길이라서 혹은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해서, 그리고 그 길을 가지 않았을 때 느낄 미련과 후회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묵묵히 걸어갔다. 그 과정에서의 불안감을 꾹꾹 누르며 내렸던 결단의 궤적들이 하나둘 쌓인 끝에 남들 눈에 비로소 그것이 나다운 흔적으로 비쳤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다움이란 내가 미리 완벽하게 정의해두고 차곡차곡 만들어 온 것이 결코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치열하게 그려 온 궤적이 남들 눈에 어떤 방향성으로 비쳤을 때 누구누구답다라고 불릴 뿐이다.

**'지금까지 무엇을 쌓아 왔고 무엇을 쌓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묻는 치열한 과정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처음부터 나다움이라는 형틀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고 나를 끼워 맞춘 것이 아니라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딘 결괏값인 셈이다.

그러니 미리부터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선을 긋고 한계를 짓지 말기 바란다. 그것이 무모한 결정으로 빠지는 것도 주의하길 바란다. 그 대신 오늘 내 앞에 놓은 일에 몰입하고 후회없는 선택을 하려 애쓰며 하루를 밀도 있게 채워나가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뒤를 돌아봤을 때 '내가 걸어온 이 구불구불한 궤적이 곧 나였구나'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정신의 만화경

힙함이란 단순히 멋진 것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 즉 '콘트라스트(Contrast, 대비)에서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뇌는 본능적으로 조화롭고 예상 가능한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그 익숙한 패턴을 깨고 전혀 이질적인 신호가 들어오면, 뇌는 낯선 자극에 반응하며 강렬한 인지적 각성을 경험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것은 없다. 그것은 단지 수많은 낡은 아이디어들을 가져와 새로운 구성을 만드는 것뿐이다. 우리는 그저 낡은 아이디어들을 가져다가 정신의 만화경(kaleidoscope)에 넣고 돌리는 것이다. _ 마크 트웨인

창조는 신의 영역이지만, 편집은 인간의 영역이다. 세상에 널린 것들을 다양하게 수집한 뒤, 우리만의 방식으로 비틀고 섞어보자. 그 짜릿한 편집의 과정 끝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틀리고 실수할 배짱

그러니 비즈니스에서, 커리어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실수가 아니다. 오히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무기력한 완벽주의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

지금 무언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틀려도 된다고, 엉뚱한 소리를 해도 된다고, 넘어져도 무릎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라고, 스스로에게 허락해 줄 포용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기회도 그 불안한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생긴다. 틀릴까 봐 두려워 가만히 제자리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단 하나의 기회도 찾아오지 않는다.

삽질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

효율 강박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과감한 시도를 아예 시작조차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효율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행동보다 판단이 앞선다. '지금 시작하는 게 수지 타산이 맞을까?' 머릿 속으로 계산기만 두드리며 끝없이 따지게 된다.

효율은 결과의 언어이지 시작의 언어는 아니다. 직접 부딪쳐 본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효율이다.

우리가 나중에 우리만의 강점이라 부른 것들이 처음엔 비효율이었을 수 있다. 처음부터 빠르고 매끄럽게 진행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서툴게 돌아가고 투입 시간 대비 성과가 별로 없어 보이는 '삽질'의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