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5년 전부터 마음속에서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회의의 순간들, 삶이 멈춰 버린 듯한 순간들이 찾아왔고, 그럴 때면 당혹감을 느끼며 절망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런 혼란스러운 순간들은 늘 같은 모습으로 점점 더 자주 찾아왔다. 그럴 때는 또 다시 삶이 멈춘 듯 느껴졌고,
"삶은 무엇이고,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
라는 똑같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첫째로는 그 질문들이 어리석고 유치한 것이 아니라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심오한 문제라는 사실이었고, 둘째로는 풀려고 아무리 애써도 내 능력으로는 답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이었다.
삶이 멈췄다.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잘 수는 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 이런 일들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타당하게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희망이 없었기 때문에, 내게 진정한 삶은 없었다. 원하는 일을 이루든 못 이루든, 결국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면서도 죽음이 두려웠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기 위해 방도를 찾아내야 했다.
나는 내 생각이 옳으며 위대한 현인들의 결론과 일치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모든 것은 덧없고 허망하다.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자는 행복하고, 죽음이 삶보다 낫다. 그러므로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삶의 의미를 깨닫고 싶다면 삶이 헛되다고 여기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자들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대중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이 순박하게 살았거나, 지금도 그렇게 사는 무수히 많은 대중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들에게서 완전히 다른 점을 발견했다.
그들의 습관, 생각, 교육 정도, 사회적 지위 등은 저마다 달랐지만, 무지한 나와는 달리 삶과 죽음의 의미를 알았고, 고통과 역경을 견뎌내며 삶을 공허가 아니라 선으로 여기며 살다가 죽었다.
우리의 모든 활동이나 논증, 학문, 예술이 그저 탐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안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보다는 땀 흘려 일해서 스스로 삶을 창조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바로 참된 삶이었다.
나는 이러한 삶에 부여된 의미야말로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였다.
살아가는 일이 편안해졌다. 머리로 쌓은 모든 지혜가 답하지 못한 질문에,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의 삶이 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귀족의 옷을 벗고, 손수 부츠를 꿰어 신고 밭을 갈며, 몸으로 살아 내기 시작했다. 『삶은 사유가 아니라 돌파다』는 톨스토이가 극심한 허무 속에서 써 내려간 『참회록』과, 그 사유가 더욱 깊어진 때 쓴 『인생론』에서 가려 뽑아 새롭게 엮은 책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적게 움직인다. 더 나은 삶을 구상하는
『삶은 사유가 아니라 돌파다』에서 쓴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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