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경영

자기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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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완성이란, 각 문명이 제시해온 완벽이라는 이상적인 궤도 위에 자신의 삶을 올려놓는 일이다. 시대마다 그 이상은 달랐지만 과거의 모든 문명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그 이상에 도달하려면 언제나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만 했다는 점이다.

고대의 지혜

절제 없이는 그 무엇도 좋을 수 없는 법이다.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익히고, 배움으로 정신을 갈고 닦으며, 훈련으로 육체를 단련하는 일은 비단 도시 국가에 이바지하는 길일뿐만 아니라, 더 고귀한 차원의 쾌락에 도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오직 절제만이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쾌락을 맛보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리스인의 지적 여가, 스콜레(skhole)는 고행이 아니다. 오히려 더 높은 차원의 쾌락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기술이다. 쾌락을 밀어내는 까닭은 본질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가 아니다. 훗날 더 강렬하고 승화된 형태로 만끽하기 위해 잠시 유예할 뿐이다. 요컨대 엔크라이테이아는 쾌락을 저축하는 기술이다. 당장의 쾌락을 멀리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그 대가로 복리 이자까지 챙기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뮤즈의 도움이 필요하다. 인간은 삶에 예술을 들일 때 즉각적이고 단순한 욕구를 넘어 더 오래 지속되는 쾌락의 경지로 스스로 끌어올릴 수 있다.

로마인들에게 이 지혜는 콘베르시오 아드 세 (conversio ad se), 곧 자기 자신에게로의 귀환이었다. 한마디로, 스스로를 다스리는 윤리다. 세네카가 말했듯, 그 지향점은 쾌락인 볼룹타스(voluptas, 쾌락과 희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참된 기쁨인 라에티티아(laetitia, 명랑함, 축제, 행복)에 닿는 데 있다.

오티움 otium은 빈둥거리는 게으름이 아니다. 자유인에게 걸맞는 고귀한 행동을 행하고, 지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자기 규율을 실천하는 시간이다.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이로운 존재가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그 길은 연구와 언어 학습, 고전 읽기 그리고 사유와 글쓰기로 이루어져 있다.

훗날 네덜란드 인문학자 에라스무스는 '사람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치열한 배움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배움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바로 스콜레다. 노력없이 인간은 완성되지 않는다.

자기완성을 향한 고독한 투쟁

자기 수양을 통해 얻은 개인적 지혜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가장 완벽하게 수행하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요약하자면

생존, 소속 그리고 자기완성. 수천 년 인류사를 지탱해온 모든 노력의 바탕에는 언제나 이 세 가지 핵심 욕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류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때로는 무모하리만큼 막대한 노력을 쏟아부었다. 먹고살기 위해, 위험에 맞서기 위해 그리고 집단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사람들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살아 있는 존재가 지나치게 풍요롭고 편안한 생활에 길들여지면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노력의 종말』에서 쓴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