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차원
소설을 쓰고 있다면 당신은 등장인물을 옹호하지 말아야 한다. 그 까닭은 바로 삼차원 때문이다.
등장인물은 당신의 상상 속에서 완전히 새로 태어나야 한다. 그런 다음 그들이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서술해야 한다. 만약 그들이 매혹적이고 사랑스럽다면 그것은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이 믿게 될 것이다. 하지만 늘 정직하게 쓰려고 노력하라.
체호프의 말을 빌리자면, 소설에서 당신은 문제를 (빈곤이든 도덕이든 다른 문제든) 제기할 뿐 그것에 답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해답을 내놓자마자 독자들은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등장인물을 통해 억지로 무언가를 증명하려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글 뒤에 있는 인격은 이토록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삼차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종이 위에는 다만 깔끔하게 쓴 단어와 문장들이 있을 뿐이다. 글이 완전히 객관적이고 '나'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단어와 문장들 뒤에는 이렇게 깊고 중요하고 감동적인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작가의 인격이다. 그 인격이 어떤 모습이든지 간에 그것은 글을 통해 훤히 드러나며, 글을 고상하고 위대하게, 감동적이거나 냉랭하게, 인색하거나 거만하게, 혹은 어떤 모습이든 작가의 모습을 닮게 만든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더 좋은 작가가 되는 유일한 길은 더 좋은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 좋은' 이라는 말로 내가 의미하는 바는 '더 착한 체하는'이 아니다. 왜냐하면 위대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나쁘다고 여겨지는 그런 일을 종종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온갖 소란과 위험과 불편으로부터 부드러운 태도로든 거친 태도로든 자신을 보호하면서 늘 책상에 앉아 더 훌륭한 문학적 스타일로 작품을 쓰고자 하는 작가들의 삶에는 무언가 모순이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영국의 르네상스기에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의 사상이나 작품이 아니라 인격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른바 '완전한 인간'이어야 했다. 다시 말하자면 행동하는 인간은 영혼을 갖고 친절한 마음과 섬세하고 아름다운 감수성을 지니고 잘생기고 시와 음악을 쓰고 그림을 그려야 했다. 또한 철학자나 학자는 무미건조하고 책상에 앉아 지내는 현학자여서는 안 되고, 육체적으로도 건강한 모습에 군인처럼 강하고 용감해야 했다. 당시 사람들은 심지어 여성들도 학식이 깊고 아름다워야 하며,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빈약하고 정직하지 않은 인격체가 가진 사상이란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들은 어딘가 타락한 구성이 있다. 그리고 설령 훌륭한 사상을 가지고 잇더라도 그 자신이 훌륭하지 않으면 감염은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무도 그의 사상에 의해서 진정으로 영향 받거나 감동하거나 달라지지 않는다.
1938년 최초 출간된 글쓰기책으로서 1987년 재출간된 이래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된 후 박물관 서점에서 계속 팔려나가며 ‘창조적 영감’이 필요한 모든 종류의 아티스트에게 고전이 된 『글을 쓰고 싶다면』은, 2008년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으로 국내 번역소개된 후 절판되었다가 2016년 ‘글쓰기로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출판문화공간에서 『글을 쓰고 싶다면(If you want to write)』이라는 원서의 이름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글을 쓰고 싶다면』에서 쓴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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