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법

쓰기가 주춤거린다면, 읽기가 문제일 수도 있다

· 읽는 시간 약 2분

글이 잘 시작되지 않는다면, 멈칫거리며 시원하게 나아가지 못한다면 의외로 쓰기가 아니라 읽기가 문제일 수 있다. 읽고 또 읽어야 조금 쓸 수 있을까 말까 하니 글쓰기를 효율적인 일이라 부르기는 어렵겠다. 수만 장의 꽃잎을 압축해 한 병의 향료를 얻는 과정과도 닮았다.

어떤 한 분야의 글을 제대로 충실히 써내기를 목표로 한다면, 그 분야의 고전과 동시대 주요 작품을 적어도 100권은 읽고 시작하는 게 좋겠다. 그 단계를 허실 없이 거치지 않으면 엉뚱한 걸 쓰고 만다.

목록을 돌파하는, 전체를 조망하는 읽기는 정독이 아니어도 괜찮기 때문이다. 시간을 넉넉히 잡고 도서관에 방문해서 훑어보는 식으로 해도 좋다.

이런 책이 있구나, 이런 색깔이구나 구경하듯 편히 읽다가 몰입되는 작품에만 몰입하는 읽기를 권한다. 그저 충분히 여행하기만 하면 된다. 어떤 분야든 푹 잠겨보았던 사람과 발목까지만 담가보았던 사람은 구분될 수밖에 없다. 장르를 잘 모르는 사람이 애매하게 흉내만 낸 작품을 내놓았을 때 장르 문학 작가들은 다음과 같이 냉정한 평가를 하고는 한다.

"이 사람, 장르 뼈가 없는데 장르를 하려고 했네."

푹 잠겨서 압력을 받을 때 형성되는 어떤 것을 뼈라고 부른다는 점이 주의를 끈다. 그 뼈를 만들어야 한다. 평생의 자산이 되니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지 말고 투입하자.

100권을 돌파한 다음에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책 고르기에는 셀 수 없는 기준이 있겠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책은 크게 세 가지였다. 좋아하는 작가가 책 속에서 언급하는 책을 따라 읽는 것, 전작주의자가 되는 것, 책 선택에 우연을 끌어들이는 것이 바로 그 세가지다.

다른 책이나 다른 사람의 말을 지나치게 많이 가져와 유행에 맞추어 빨리 내는 책들은 피하면 좋은데, 그런 책을 피하는 능력도 왕성히 읽다 보면 어렵지 않게 얻어지는 듯하다. 매끈한데 고유의 내용은 한 점 없는 책과 서툴지만 작가가 느껴지는 책 중 언제나 후자를 고르고 싶다.

쓰기가 멈추었을 때 거칠다 싶게 마구마구 읽는 일은 효과가 없었던 적이 없다. 삼키고 또 삼켜 내부를 원활히 가동시키자 (그렇다고 읽기에 속 편히 빠지면 허생이 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해본다. 쓰기의 불씨가 사그라들 정도로까지 젖어들면 곤란하다). 이때다 싶은 순간 동전을 튕겨 뒤집듯 쓰기로의 전환을 경쾌히 해내야 한다. 그것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창작자 본인 뿐이다.

『당신의 독자가 될게요』에서 쓴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