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르네상스 귀족들은 소네트를 썼나
"이 일에는 돈이 따르지 않아" "이건 결코 출판되지 않을 거야" 같은 식으로 생각하면, 당신 속 에너지의 샘이 말라붙고 자신을 아무리 밀어부쳐도 단 한 쪽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모든 신사들은 소네트를 썼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시를 유명한 문학잡지에 싣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그렇다면 왜 소네트를 쓴 걸까?
여러 이유로 사랑의 소네트를 섰다. 우선 사소하고 부차적인 이유는 자신이 소네트를 쓸 줄 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어떤 숙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서였다.
이 내재된 보상 가운데 하나는 그가 소네트를 쓰면서 자신의 느낌을 더 잘 알고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자신의 감정 중 어느 것이 가짜이며 어느 것이 진짜인지, 그리고 자기 모국어의 아름다운 점이 무엇인지를 한층 잘 알게 된다.
반 고흐가 당신이나 나와 다른 점은 우리는 하늘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타인에게 보여 주려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늘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럴 만큼 충분히 관심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흔히 이미 기가 푹 꺾여 있어서, 우리가 하늘을 보며 느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화가들은 기억을 더듬어 작품을 구성하고 그린다. 그런 다음 또한 기억을 더듬어 자신들이 좋아서 그린 것을 북북 문질러 망쳐 버리고, 그러고는 그 그림에서 물러서서 심각한 얼굴로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아내려고 애쓰다가 마침내는 그것을 다르게 만들어 버리는데, 이럴 때도 언제나 기억을 더듬는다. 이런 모습을 보며 때때로 나는 혐오감에 휩싸이며 너무 지루하고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_ 반 고흐
그들은 노동하는 사람의 형태가 진지한 대상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그들은 이런 대상들이 너무나 난해하면서도 아름답기 때문에 그것들 속에 감추어진 시를 표현하는 임무에 누군가의 한평생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_ 반 고흐
위대한 천재 반 고흐의 창조적 충동이란 단지 자신이 본 것을 사랑하고, 과시욕이 아니라 관대함에서 그것을 타인들과 나누고 싶어 했던 열정이었다. 그가 자신 속에 갖고 있던 것을 당신 내면에 갖고 있으며, 그것을 표출해야 한다는 점이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그 당시에는 내 삶이 약간 덜 곤란했다는 점만이 지금과 다를 뿐이다. 하지만 내면의 상태에 관한 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무언가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 이미 생각하고 믿고 사랑했던 것들을 지금은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고 믿고 사랑한다는 점이다. _ 반 고흐
몇 년 안에 나는 작품 몇 점을 완성하면 된다. 스스로를 재촉할 필요는 없다. 서둘러서 좋을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완전한 평온과 고요 속에서, 최대한 규칙적으로 집중하여, 가능한한 가장 단순하고 간결하게, 계속 작업을 해야 한다. _ 반 고흐
이러한 내재적 보상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꿰뚫는 이해, 즉 빛나는 통찰이다. 하늘을 그림으로써 반 고흐는 그저 바라볼 때보다 훨씬 더 하늘을 잘 보고 찬탄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남편을 그려보지 않는다면 그의 진정한 모습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며, 그의 이야기를 써보지 않고서는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를 짓누른 억압과 장애물 가운데 하나는 나의 글이 과연 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였다. 나를 비틀거리게 만든 또 다른 커다란 방해물과 억압은, (내가 큰돈을 벌고 대중을 눈부시게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에) 글쓰기가 나 자신을 과시하고 예술의 거장이 되게 하고 특출한 인물로 우뚝 세워주는 것이라는 관념이었다.
(하지만 당신이 쓰고 싶도록 만드는 동기란 그것이 무엇이든 좋다는 점을 기억하라. 그것을 활용하라. 시작하라. 만일 당신이 대중을 눈부시게 만들고 싶다면, 시도해보라. 행운이 있기를! 나의 경우에 그것은 압박이었고 역겨운 글을 쓰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만약 자만심과 과시욕이 당신에게 글을 쓰기 시작하도록 했다면 나는 그것에도 감사한다. 그것은 가장 큰 축복이다. 글쓰기를 통해 당신은 그런 동기를 통과하여, 더욱 위대하고 더욱 풍요로운 동기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내 글쓰기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나 자신이 갖고 있는 느낌이나 진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욕망이었다. 이 모든 것을 배우게 되자 그 후로 나는 자유롭고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었으며, 도취한 멍청이가 되는 일에 조금도 위축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은 마치 성공을 추구하는 사업가처럼 굳센 결의로 성공하려는 맹렬한 야심을 갖고서 내몰리며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오로지 행동과 이기적 분투만 신경 쓰면서 사랑과 상상력은 까맣게 망각하고 조만간 미라처럼 정서적으로 마비되고 영적으로 석화되어 비창조적이 되는 식으로...)
그렇다. 이런 경험으로 나는 글쓰기란 성취가 아니라 관대함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 글쓰기를 즐기게 되었다.
주제넘습니다만, 당신은 다시 글을 써야 합니다. '창조적 작업'에는 필수적이면서 생명을 주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일종의 흥분 상태이지요. 그것은 마치 수도꼭지 같아서, 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나오고 틀면 틀수록 더 많이 나오지요.
오늘날의 역겨운 물질주의로 인해 우리는 만약 단 한명의 관중도 얻을 수 없고 돈을 벌지도 못한다면 글쓰기나 그림그리기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느끼기도 하지요. 하지만 소크라테스와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예술작업을 한 까닭은 그 보상이 내재적인 것, 즉 '영혼'의 확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든 돈을 벌거나 갈채를 받을 수 없다면, 인간이란 어차피 때가 되면 죽게 마련인데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소크라테스와 그리스인들은 영혼은 아마 영원히 존재할 것이므로, 인간의 삶은 '영혼을 돌보는 일'에 (그들에게 영혼이란 지성, 상상력, 정신, 이해, 인격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바쳐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큰돈을 벌거나 한 푼도 벌지 못하더라도 당신이 작품을 썼다는 것은 똑같이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1938년 최초 출간된 글쓰기책으로서 1987년 재출간된 이래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된 후 박물관 서점에서 계속 팔려나가며 ‘창조적 영감’이 필요한 모든 종류의 아티스트에게 고전이 된 『글을 쓰고 싶다면』은, 2008년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으로 국내 번역소개된 후 절판되었다가 2016년 ‘글쓰기로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출판문화공간에서 『글을 쓰고 싶다면(If you want to write)』이라는 원서의 이름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글을 쓰고 싶다면』에서 쓴 노트
- 상상력은 천천히, 조용히 온다2026-09-07
- 왜 르네상스 귀족들은 소네트를 썼나지금 읽는 글
- 상상력은 모든 사람의 성체이다2026-09-07
- 누구에게나 재능, 독창성, 이야깃거리가 있다2026-09-07
- 서문: If you want to write2026-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