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코딩의 별자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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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코딩은 하늘의 별처럼 고정되어 있다. 삶을 살아가며 달라지는 것은 별 자체가 아니라, 프레임의 위치와 크기다. 그리고 인코딩이 밀집된 영역이 프레임 안에 들어올 때, 비로소 그 별들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 연구에 등장한 사람들은 자신의 인코딩이 가장 밀집된 영역에서 활동할 때 삶이 가장 잘 작동했다. 나는 이를 줄여서 '프레임 안에 있다' 라고 표현한다.

아무리 뒤어난 사람이라도 프레임 밖으로 벗어나면 길을 잃을 수 있다. 반대로 다시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면 삶은 다시 살아난다.

존 글렌과 고든쿠퍼: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다

화학 공부나 운동에서는 자신의 인코딩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지만, 조종은 달랐다. 시간과 훈련이 쌓이면 자신이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점점 또렷해졌다. 무엇보다 그 일은 내면의 불꽃을 강하게 지폈다.

나는 내가 가장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는 세계를 발견했다.

강점보다 더 깊은 인코딩

핵심은 두 사람이 삶의 많은 가능성 가운데,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인코딩을 발견했다는데 있다. 즉, 남보다 무엇을 더 잘하느냐는 중요한 기준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 때 가장 탁월해지는지를 찾아야 한다.

인코딩은 밖에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다가 발견되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잘하는가?"가 아니라,
"당신은 무엇에 맞게 인코딩되어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이미 존재하던 인코딩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방향으로 그 시간을 쏟아부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프레임 안에서 프레임 밖으로, 다시 프레임 안으로

첫째, 사람의 인코딩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지만, 그것이 프레임 안에서 드러나는 방식은 삶의 흐름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삶이 바뀌면 프레임 밖으로 밀려나는 인코딩도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새로운 인코딩을 '추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래부터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던 별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에 가깝다. 어떤 인코딩은 수십 년 동안 계속 프레임 안에 남아 사람의 여러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반면 어떤 인코딩은 프레임이 바뀌면서 보이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더 이상 호출되지 않을 뿐이다.

둘째,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자신의 인코딩과 어긋난 방향으로 움직이면 흔들릴 수 있다. 즉, 프레임 밖으로 밀려나면 삶은 쉽게 꼬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순간들을 계속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젊은 시절의 안개 속을 헤매다 자신만의 인코딩을 발견한다. 또 어떤 사람은 절벽을 만나 완전히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뒤, 다시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자신이 무엇에 맞지 않는 사람인지를 아는 일은, 자신에게 맞는 것을 아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자신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인코딩에 맞춰 설계할 수도 없다. 여기에는 시행착오와 실험, 실수와 뜻밖의 행운, 그리고 실망까지 모두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 자신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감각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동시에 프레임 밖으로 밀려났다는 신호 역시 알아차려야 한다.

셋째, 완전히 프레임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맞는 '고슴도치 칩'이 필요하다. 조직에 들어가기보다 스스로 환경을 만들거나 바꾸며 자신의 인코딩에 맞는 공간을 찾아냈다. 방식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분명했다. 이 연구 속 사람들은 자신의 활동과 환경이 모두 인코딩과 맞아떨어질 때 가장 크게 꽃을 피웠다.

행복한 고슴도치에게는, 행복한 고슴도치의 집이 필요하다.

인코딩 발견하기: 자기 인식에서 인코딩된 행동 방식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이 본능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예민하게 관찰하는 '자기 인식'에 그 답이 있었다.

이들은 살아가면서 어떤 상황이 자신 안의 특정 인코딩을 깨우는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깨달음을 토대로 자신에게 맞는 구체적인 행동 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만들어갔다. 다시 말해, 인코딩을 삶의 운영 원리로 바꿔낸 것이다.

자신만의 글쓰기 인코딩을 발견하다: 토니 모리슨

저녁 7시쯤 아이들을 재워놓고 나면 긴 밤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잠들고, 혼자만 깨어 있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한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은 새벽 4시에 글이 가장 잘 써지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어둠이 천천히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아침이 밝아오듯 그녀 안의 창작 감각도 서서히 깨어났다.

모리슨에게 글쓰기는 어느 순간 강박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그녀는 새벽 직전의 고요한 시간을 사랑했다. 동시에 짧은 시간의 틈을 활용해 글을 써낼 수 있는 드문 인코딩이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조차 그녀는 늘 글쓰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설거지를 할 때도, 잔디를 깎을 때도, 운전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쓰면 쓸수록 그녀는 자신이 글을 쓰도록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도. 누가 시켜서 쓰는 것이 아니었다. 외부의 압박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연구 대상자들은 완전히 고슴도치 모드에 들어갔을 때, 자기 인코딩을 가장 잘 끌어낼 수 있는 방식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유난히 잘 맞는 실천법과 행동 방식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새벽 4시 패턴
작가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장소에 다가갑니다. 무언가와 연결되는 곳, 자신이 통로가 되거나 그 신비한 창작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곳 말이죠.

물속으로 들어가기
글쓰기는 늘 현실에서 조금 밀려나는 느낌이에요. 마치 물속을 걷는 것 같죠. 다른 모든 건 희미하고 멀게 느껴져요.

글쓰기에 대한 강박
자기 절제보다 더 극단적인 표현인 강박

혼란 속 글쓰기
바쁘고 단절된 일상에서도, 필요하면 여러 일을 동시에 병행하며 글을 쓸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글쓰기
모리슨은 먼저 자신을 독자 1호로 본다. "내가 읽고 싶어서" 쓴다. 그 책을 읽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쓴다.

질문에서 시작하는 글쓰기
모리슨에게 소설의 씨앗은 대개 스스로 답을 찾고 싶은 질문의 형태로 찾아온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그 질문을 탐색하는 방식이다.
"남자들은 어떻게 자기 안의 영웅적인 가능성을 배우게 되는가?"
"완전히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을 알게 되는가?"

머릿속의 소리를 글로 옮기기

글쓰기는 결국 다시 쓰기다
며칠 동안 형편없이 써도 괜찮아요. 나중에 고칠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그리고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치다 보면 결국 글은 더 좋아져요.

결말부터 먼저 아는 방식
항상 결말을 알고 시작해요. 다만 처음에는 등장인물이 어떻게 그곳까지 가게 될지는 모를 뿐이죠. 어떤 의미에서는 추리소설과 비슷해요. 누가 죽는지 이미 알고 있어요. 이제 남은건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알아내는 일이죠.

노란 줄 공책과 연필

집순이 모드
여행이나 사교 모임도 많이 피한다. 그냥 한곳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 있어도 행복하다. 글쓰기는 제 삶 그 자체에요. 제게는 휴식도, 즐거움도, 위험도, 흥분도 모두 그 안에 있어요.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서 쓴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