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법

행하지 못할 욕망을 키우느니 아이를 요람에서 죽여라

· 읽는 시간 약 6분

이 책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당신이 연필을 쥐고서 그 생각을 표현하거나 종이나 캔버스에 옮겨놓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그 생각을 바라볼 수 있고, 만약 그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계속 행동할 수 있고 또 다음에도 다시 행동할 수 있다. 생각하라. 그런 후에는 그것을 내보내라. 즉 행동으로 옮겨라. 늘 그렇게 하라. 한동안 조용히 생각에 잠기라. 나중에 그것을 조용히, 신념이나 의지에는 그다지 의존하지 말고 표현하라.

너무 많은 '해야만 한다'가 당신의 재능이 자유롭게 즐겁게 빛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당신에게 행동을 거부하라고 권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만 초조하고 공허하고 끝없이 의지적인 행동은 무익하다는 것, 그리고 더욱 빨리 달려서 쓸데없는 일을 많이 행할수록 당신은 더욱 황폐화된다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당신을 격려하고 싶을 뿐이다.

(이른바 '의지'란 당신이 잘 못한다고 누구나 생각하는 일을 끈기 있고 완강하게 실행하는 것을 뜻한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그 일을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사람들은 '의지'에 의해 놀라운 일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상상력과 사랑이 끔찍스럽고 무의미하다고 경고하는데도 불구하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군인이나 수전노가 이런 일에 합당하다.)

그러므로 당신이 글쓰기를 원한다면 이렇게 해보라. 혼자서 당신의 방에 틀어박히라. 고요 속에서 적어도 한 시간 동안 느릿느릿 하찮은 일을 해보라. 연필을 집어 들거나 타자기 앞에 앉은 채 창밖을 내다보라. 그리고 하늘에서 본 것이 무슨 색인지 정확히 몰두하여, 고요하고도 꿈꾸는 듯한 주의력을 가지고 쓰거나 이름을 붙여 보라.

그러나 하고 싶지 않다면 굳이 문장을 만들려고 애쓰지 마라. 혹은 당신의 머리를 스치는 것들을 꿈꾸듯이 아무렇게나 써보라. "난 오늘 일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아. 이 후텁지근한 느낌은 무엇일까?" 아니면 그저 게으르게 끄적거려라.

생각은 바로 이런 식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당신은 뭔가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더 많은 이야기가 나타날 것이다.

내가 경험으로부터 배운 것을 이야기하자면 8~9킬로미터 정도의 긴 산책이 도움이 된다. 반드시 날마다 혼자서 이런 산책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를 몇 년, 최근에야 나는 재충전된 듯한 느낌이다. 상상 속에서 "나는 자유롭다" 혹은 "서둘 필요가 전혀 없어"하며 자신과 대화하는 산책을 하고 나면, 그 후에는 생각이 제 나름의 고요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이 경험을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태평하게 산책을 할 때 나는 현재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이럴 때에만 창조력이 쑥쑥 커간다.

이토록 분주한 마음 상태를 지속하려고 대다수 사람들은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불쾌한 정신적 공백의 처음 몇 분을 견뎌내면 창조적인 생각이 찾아든다. 그 시작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그 생각의 첫 전언은 오로지 잡담과 식사와 독서와 지루한 일과 라디오 청취가 전부인 이 삶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상상력은 당신을 안내하여 어떻게하면 삶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대부분의 말하기는 단지 지난 일과 추억을 떠들어 대는 것일 뿐 창조적인 상상력이 아니다. 대화를 할 때 우리는 어제 한 일, 생각한 일, 들은 일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과거에 사는 것이지, 결코 현재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대화가 정말 재미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변화가 담화자들에게 일어난다. 상대방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거나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 혹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는 그의 내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킨다.)

그건 다만 참을성을 갖느냐에 달려 있다. 오랜 시간 혼자 지내거나, 긴 산책을 여유롭게 하면서 현재에 산다면 보상이 있을 것이다. 생각, 근사한 아이디어, 소설의 플롯, 동경, 결심, 계시가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나는 이걸 진짜로 증명할 수 있다.

이 창조적 생각은 어떻게 올까? 느리게 온다. 그것은 당신 내면에서 폭발하는 깨달음의 작은 폭탄이다. 고독한 긴 산책 끝에는 반드시 이 고요하고 내면적인 작은 폭탄이 소리 없이 터진다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당신이 노심초사하며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창조력이라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실은 초조한 긴장은 오히려 창조력을 깜짝 놀라 도망치게 한다. 그러므로 혹사하려고 애쓰지 마라. 어떤 것을 그때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만일 이해되지 않으면 그냥 다음으로 넘어가라. 당신이 두 번째, 세 번째 것을 이해하게 되면 그 첫 번째것도 불현듯 이해될 터이니까. 무언가 하나를 이해하더라도 그것을 혹사하듯 되씹지 말라. 그것을 암기하려고 자신을 혹사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 그것은 영원히 당신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라. 그것을 잊어버릴까 두려워서 혹사하듯 되씹고 반복하는 것은 완전히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 시간은 더욱 새롭고 더욱 위대한 것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혹사하기란, 마치 엄청나게 재능 있는 사람들이 아주 소량의 작품을 써놓고서는 그것을 완벽하게 다듬으려고 진짜 결점 하나 없이 완벽한 보석 하나를 만들려고 고치고 또 고쳐 쓰는 일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1년 혹은 5년 만에 진주 하나를 생산할 뿐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까닭은 혹사하기, 갈고닦기, 다시 말해서 작은 문학적 진주가 혹시나 완벽하고 확실한 것이 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시간 낭비이며 가련한 일이다. 왜냐면 이런 사람들 속에도 넘치는 생명과 시와 문학이, 상상력의 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보석을 연마하느라 노심초사하며 바쁜 탓에 그 샘이 솟아나오지를 못한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만약 그들이 계속 새로운 것들을 자유롭고 관대하게 그리고 걱정 없는 진실함으로 쓴다면, 분명 그들은 어떻게 진주를 만들어 내는지를, 또한 어떻게 하면 전혀 힘들이지 않고도 단 2초만에 훌륭하게 연마할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작업하기는 혹사하기가 아니라 오히려 해볼 만한 근사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창조력은 당신들 모두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창조력에게 약간의 시간만 내준다면, 창조력을 조금이라도 신뢰하고 그것이 자신의 속으로 조용히 들어오는 것을 지켜본다면, 항상 서두르는 탓에 혹은 게으르고 행복해야 하는 시간에 죄의식을 느끼는 탓에 그것을 멀리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멀리하는 핑계로 스스로에게 최악의 거짓말 - 자신에게는 창조력이 전혀 없다는 거짓말 -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글을 쓰고 싶다면』에서 쓴 노트